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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옛사람들의 삶에서 배우는 ‘노년의 지혜’
2020년 10월 07일(수) 18:02
노인은 지혜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초라한 겉모습을 싫어하기보다 아름다운 지혜를 그 속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어린 아이들이 가정의 꽃이라면 노인은 지혜의 등불이기 때문이다.
노년의 지혜는 자신을 낮추고 욕심을 버리는데 있었다.
퇴계 이황 (1501~1570)은 하루 2끼만 먹었다.
반찬도 무, 가지, 미역 뿐일 때가 많았다.
농암 이현보 (1467~1555)는 임금이 수십 번이나 불렀지만, 한번 벼슬에서 물러난 뒤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이 일흔에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75세에 고국으로 돌아온 청음 김상헌 (1570~1652)은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고향에서 두문불출했다. 보통 살아서는 천지에 순응하고 숨을 거둘 때는 편안했다.
대부분 어진 자는 오래 산다.
조선시대 27명 임금의 평균 수명은 46세였지만 청백리 (219명)는 68세 였다.
고려왕들은 평균 42.3세까지 살았지만 스님들은 70.2세까지 수를 누렸다. 요즘엔 노인부양세태를 화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노인요양병원이나 노인요양원 덕분에 대한민국 이혼율이 낮아졌다느니, 노후에는 돌아가실 때까지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느니, 특히 자식이 사업하다 망하면 온 가족이 다 망하게 된다느니, 이러쿵 저러쿵 잡다한 말들이 오간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지만 씁쓸하기만 하다.
과거 효를 강조하는 유교사상의 대가족 농경사회에서 벗어나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과정을 거친 현대의 핵가족시대에는 더 이상 본인의 노후를 자식들에게만 의존할 수 없는 것도 냉엄한 현실이다.
우리는 흔히 지식(知識)은 양적 개념이며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고 또 부분적으로 아는 것인데 비해, 지혜(知慧)는 질적 개념이며 미래에 대해 하는 것이고 또 전체적으로 아는 것이다.
지식이 사실 인식인데 비해, 지혜는 의미 각성을 의미한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더 바랄것이 없는 사람이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먼 것과 가까운 것을 같이 볼 줄 안다.
그래서 작은 것도 작다고 보지 않고, 큰 것도 크다고 보지 않는다.
물건의 양은 무궁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간의 흐름에 대해 알고 있다. 오래 살아도 싫어하지 않고, 짧게 살아도 더 바라지 않는다.
시간은 멈출 수 있는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찼다가 기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잃어도 슬퍼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분복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두손을 꼭 쥐고 있지만, 죽을 때는 반대로 두 손을 편다.
태어날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움켜잡아 가지고 싶지만 죽을때는 가진것을 다 내주어 빈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살 이라도 더 먹기 전에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즐기는 법을 배우고 베푸는 법을 배워야한다.
하지만 이 나라 노인들은 지혜고, 버려야하고 할 겨를 조차도 없다.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사는 노인이 더 많다.
이제 큰 지혜는 작은 실천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한 때 세계를 이끌었던 지도자들도 결국 나이가 듦에 따라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주 사소한 일부터 차근차근 정리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아름다운 노년기를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인은 지혜의 상징이라지만 노년은 원숭이라 하지 않았던가. 어린이와 똑같아 지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늙은이가 되면 설치지 말아야 한다.
미운소리, 우는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소리랑 하지도 말고 조심조심 알려줘야 한다.
알고도 모른 척 어수룩하고 그렇게 사는것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옛날 노년의 지혜는 천지에 순응했다.
자신을 낮추고 욕심을 버리면서 살아왔다.
장기채 주필 / iho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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